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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의사가 되고 싶다?! (비가역에 관하여...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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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산문에서 시간에 관한 비가역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시간의 비가역성은 배경으로 깔아두고 매우 현실적인 관점에서 선택에 관한 비가역에 대해 글을 써본다. 

 

괜히 어렵게 얘기를 꺼내는 것 보다, 쉬운 얘기로 차근차근 접근해보자.

 

어릴 적에, 집에서나 밖에서나 어른들을 만나면 종종 듣는 얘기가 있다. 

'뭐든 때가 있어. 공부도 때가 있는거야! 그러니깐 열심히 해!'

 

사실, 어릴 때는 정말 이해 안되었던 논리였고, 오히려 지금 처럼 매체의 다양성과 정보의 풍부함이 가득한 시대에 '공부에 때가 있다니..' 가당한 말인가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이 지닌 두 가지 양면성이 있는데 사실 해석하기 나름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시대착오적인 나약한 생각을 가지고 살면 어떻게 해. 무슨 때가 있어! 그냥 하고 싶을 때 하면 되는거지!'

또 다른 누군가는 '맞아. 뭐든 때가 있지. 내가 그 때로 돌아가면 이렇게 했을텐데. 그 때 그걸 못한게 아쉽네. 지금 그걸 하는건 쉽지 않네'

 

무엇이 맞는 말일까?

둘다 맞다. 

 

도대체 무슨 얘기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좀 더 구체적인 예로 생각해보자.

 

제목에도 썼듯이, '의사가 되고 싶다' 라고 누군가 생각을 했다치자.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성별을 떠나서 나이로만 구분지었을 때,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만약, 10대의 청소년 혹은 늦어도 20대의 대학생이라면.. '그래! 열심해 해봐~ 할 수 있을꺼야~!!'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겠고,

30대만 되어도 '야~ 미친거아냐? 지금 와서 의사가 되겠다고? 수능 다시볼 수 있니?'

40대, 50대라면 '또라이 아냐? 정신차려. 암기라도 제대로 할 수 있니? 혼자살아? 뭐먹고 살껀데? 단단히 미쳤구만!'

 

나이에 따른 암기력의 차이는 인정한다해도, 불가능한 것까지는 아닌데 나이 별로 엄청 다른 상황이 전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신체적인 능력이 불가능해서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솔로라고 쳤을 때 부양할 가족이 없는 상황에서라는 조건으로 볼 때, 나이든 사람이 경제적으로도 유리할 것이고, 인생경험과 인내력 등등 암기력을 제외한 기타 능력치는 뒤 떨어질 것이 없다. 

 

그래서, 결론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늦깎이에 원하는 꿈을 도전하며 사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자, 그럼 이제 우리는 우리의 꿈을 찾아 떠나야할까?
절대 아니다. 

 

이상과 현실은 구분해야한다. 여기서 비가역적인 인간의 삶의 인생에 대해 논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위의 예를 의사라는 직업적인 요소로 가정했지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인간의 삶 속에서는 나이대 별로 비가역적에 가까운 요소들이 계속 존재한다. 단지 직업의 선택뿐만아니라 결혼과 취업, 육아, 취미생활, 스포츠활동 등 많은 것들이 비가역적 선택요소들이다. 

 

간혹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도 비가역적인 요소와 연관지어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누구나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러면 잘하는 것을 직업으로 선택하고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만 남겨야한다. 

 

자본주의에서 직업은 금전적인 목적이 우선된 상황에서 본인의 전문성과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역할이기 때문에  사용자에게 잘하는 것을 어필하거나 객관적인 자격을 입증한 상태에서 고용될 수 있는 것이지, 개인의 그 직업에 대한 좋고 싫음의 기호 따위는 사용자 입장에서 고용의 선택요소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본인이 잘하는 것도 모르고 좋아하는 것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고,

좋아하는 것만 있을 경우, 그것을 어떻게든 직업과 연결시킬려고 하다가 중요한 타이밍을 놓친다. 

 

그러다가 본인이 잘하는 것을 늦게 알았을 경우에 이미 타이밍을 놓쳐서 현실에 적응해서 사는 삶을 살던가, 큰 용기로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잘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늦은 도전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인간은 본인의 능력치를 계발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는 노력과 경험을 해야하고, 하루라도 이른 나이에 잘할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구분지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인생의 플랜이 짜여지고, 비가역적인 시간 앞에 인생의 많은 비가역적 요소까지 누적되는 상황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분히 꼰대스러운 관점에서 공부(학교입시 관점의 공부에 국한함)를 바라볼 때,

어린 시절에 공부를 해야한다 당위성에 대해 말하자면, 성인이 되어 나이가 들수록 공부를 하기 위해 시간과 선택의 비가역적인 요소가 누적된 상황에서 돌이키기에는 똑같은 공부를 하는 그 에너지 외에 수많은 기회비용이 뒤따르기 때문에 그 선택이 쉽지 않고, 설령 선택을 한다해도 지속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어릴 때 누구나 다 공부해서 1등을 할 수 없고 해야한다는 논리는 아니지만, 어느 분야든 10% 안에 든다는 것은 생각보다  천재성을 요구하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어느 정도의 노력만 있다면 가능하다. 

 

아무튼, 성실함과 꾸준함에 대한 연습게임이 공부인데, 이것이 바탕이 되면 공부에 대한 과정과 결과 모두 인생에서 선택의 폭과 기회를 넓게 해준다. 또한, 진정하게 본인이 잘하고 좋아하는 교집합을 발견할 확률도 높일 수 있다.

그래서, '공부도 때가 있는 것이다' 라는 말에 사춘기 반발심은 뒤로 하고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례가 뭐가 되었든, 비가역적인 선택 요소가 우리에게 늘 존재하고 지금 실행할 때 가장 효율적인 것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잊지 말고, 지나간 선택을 되돌리려 애쓰지 말고, 지금의 선택에 충실해야 나중에 헛고생을 하지 않음에 유의해야 한다. 

 

당신이 오늘 선택해야할 비가역적 요소는 무엇인가?

지나간 버스를 잡기 위해 뛰지 말고, 다음 버스를 잘 타자. 

어설프게 버스 잡으러 뛰다가 다가오는 버스도 못타지 말고..

 

2022년 6월 19일 아침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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