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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나 다시 돌아갈래?! (비가역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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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새내기로 스무살이 되던 해에는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면서 영화관을 참 많이 다녔던 것 같다. 

 

그 때 보았던 수 많은 영화 중에서 유난히도 '박하사탕'이란 영화가 내 머리 한켠에 잔잔하게 남아있었다. 

 

나는 원래 영화를 두 번은 안보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무언가의 힘에 이끌려 20년만에 박하사탕을 다시 찾아봤다. 

 

대학교 1학년 때 뭣 모르고 본 영화가 왜 그렇게 머리속에 남아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미래의 내가 옛날로 돌아가서 해주고 싶었던 얘기가 있었나보다. 

'이봐~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이 영화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될테니.. 일단 영화는 봐두길 바래. 나중에 다시 만나서 이 영화에 대해 얘기해보자고!'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진짜 시간이 흘렀고, 나도 모르게 이 영화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 요즘이다. 

 

영화감상평을 쓰고자 함은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우리가 잘 아는 대사.

'나 다시 돌아갈래'

이 문장이 주는 의미에 대해 글을 써볼까 한다.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그렇다. 시간의 속성이 바로 그것이다 .

비가역적이라는 속성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 

 

사실, 비가역적이라는 말은 열역학에 나오는 단어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쓰고 있지만, 엄밀히 열역학적인 의미로 따져보면, 

가역적이지 않은 것. 즉, 이전상태에서 현재상태가 되었을때 다시 이전상태로 돌아갈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인간이 세상을 구분하기 아주 쉬운 것이 이분법적 사고이다. 중간이 있을 수 있는거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지만, 정말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개념이 가역적인 것과 비가역적인 것이다. 이것의 중간은 없다.

흑백논리라고 하여도, 중간에 회색이 있을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되돌이킬 수 있는 것과 되돌이킬 수 없는 것에 중간은 없다. 

 

시간.

 

시간은 절대 되돌릴 수 없다. 그렇기에 지나간 시간에 고통받을 수 없는 인간은 지나갈수록 안좋은 기억은 지워버리고 좋은 기억만 남겨서 추억이란 이름으로 미화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우리는 참 잘 고안된 알고리즘으로 운영되는 감정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지난 순간이 행복으로만 가득차 있었나? 아마 평범하거나 순탄치 않았던 순간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뭐든 지나면 추억이 되는 후보군에 들어가는데, 좋은게 많다면 안좋은 것은 다 지워지게 되어 있다. 즉, 좋은 추억이 많은 사람이 제대로 된 추억을 간직하게 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요지는, 시간이란 비가역적인 그리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절대가치를 지금 우리는 매순간 일분 일초를 사용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그 시간 속에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을 많이 쌓아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고통마저도 추억으로 만드는 인간이라고 하여도 굳이 힘듦과 아픔마저 추억으로 포장할 이유가 없기에 최대한 행복으로 시간을 채워놓아야 한다는 것.

 

박하사탕의 설경구(영호 역)는 그러고 싶어서 그랬을까? 그도 처음에는 순수했던 대학생이었고, 순수했던 경찰이었고, 철없는 남편이었고 어설픈 아빠였다. 세상의 풍파와 시대상의 아픔이 삶속에 녹아들면서 점점 변하고, 때가 묻어가는 그를 누가 비난할 수 있으랴. 

 

그런데, 본인의 삶의 관점 중에서 가장 주장하고 싶은 것은 '세상 탓 하지말자, 신세 탓 하지말자' 이다. 

힘들게 살았고 고통을 겪었다고 뭐 그리 남탓하고 앉아서, 미래도 그리지 못하고 사느냐 이 말이다. 

또 10년이 지난 후에도 똑같은 신세한탄하면서 살 것인가? 

 

이 소중한 비가역적인 시간은 1초도 흘러가면 되돌이킬 수 없다. 헛되이 쓰지말자는 얘기이다. 

매순간 최선을 다해서 미친듯이 전력질주 하자는 말이 아니라, 조금만 계획해도 미래가 순탄할 확률이 높아지며, 현재의 감정도 행복감으로 컨트롤 할 수 있고, 이런 것들이 켜켜이 쌓여 나중에 진짜 행복을 추억을 머리 속에 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말처럼 쉽지 않은 것 알고 있다. 그런데, 쉽지 않다고 질질 끌려다녀야하나?

본인의 삶의 주도권은 본인이 쥐고 있는 것이다.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똑같이 직장생활을 하는데, 하루하루 루틴하게 재미없게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누구는 하루하루 활기가 넘치며 긍정적으로 뭔가를 계속 추구하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PASSION으로 가득차 있다. 

 

우리는 후자가 되어야한다. 왜 그래야하느냐의 타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시간의 비가역성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그 때가 좋았었어. 이런말을 제대로 하려면 그 때가 진짜 좋았어야 한다. 

고통은 추억으로 포장될 수 있지만, 고통은 그것을 느끼는 순간에 행복은 절대 아니기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행복의 수치를 극대화시키는 방법을 마치 자전거 타는 법을 한 번 익혀두면 힘들지 않게 탈 수 있듯이 몸에 내재화시켜놔야 한다. 

 

특히, 습관이 무서운 것이다. 좋은 습관과 좋은 사고는 나의 삶을 바꾸는 씨앗같은 역할을 하지만 안좋은 습관과 사고는 파멸의 지름길로 우리를 안내한다. 

 

비가역적이란 말처럼 나에겐 무서운 말이 없다. 

 

그래서 어떤 행동과 결정을 할 때, 이것이 잘못되었을 때 다시 돌이킬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더 유심히 살펴보고 결정하는 편이다.

 

재미있게도 대부분의 것이 비가역적이라는 것인데, 우리는 가역적으로 생각할 때가 너무 많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에게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를 주고 사과나 보상이 이뤄지면 상처를 준 사람은 원래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가역적인 상태라고 생각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그 전의 감정으로 되돌이키가 매우 힘든 비가역적인 상태가 된다.

 

아이가 놀아달라고 할 때, 친구와 멋드러진 술자리를 택한 사람의 머리 속에는 집에 돌아가서 또는 주말에 놀아주면 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가 삐진 감정을 돌이키고 보상할 수 있다는 가역적인 사고를 하지만, 아이는 아빠와 놀고 싶었던 시간이 흘러버렸기에 절대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인 상태가 되어 버렸다. 

 

어떤 상황이든 그것이 상대가 있던 없던, 단 한 개만이라도 제자리로 올 수 없다면 비가역적인 것으로 보아야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내가 그것을 만회하거나 돌이킬 수 있다고 착각하는가?

콩이 담긴 컵에 콩을 흘린 것을 다시 담아 놓는 것만큼 그렇게 삶이 간단한 것이 아니기에, 특히 사람 사이에 일들은 비가역적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는 것이 훨씬 좋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좀 더 비가역적이라는 것에 대한 잣대로 일분 일초를 어떻게 보낼 것이냐는 물음을 끊임없이 던지며 그 시간을 행복감의 극대화와 연관된 시간으로 사용해야 한다. 

 

결국, 시간이 지나서 우리에게 남는 것은 집문서와 슈퍼카, 명품시계나 주식잔고가 아닌 좋은 기억이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재화를 누리고 사는 기쁨도 좋지만, 수단과 목적은 명확히 구분하고 이해하도록 하자. 

 

아무튼, 좋은 기억이 추억이 되어야한다. 어쩔 수 없는 고통을 추억으로 남길 수 있겠지만, 삶의 괴로움을 추억으로 포장하지 말자. 진짜 행복을 추억으로 남겨보는 연습을 해보자. 

 

나 다시 돌아갈래?

아니, 돌아갈 수 없다. 

 

2022년 6월17일 금요일 오후 세시경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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