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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그건 니 생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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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윌리어네어 입니다. 

오늘은 '다른 사람들에게 휩쓸리지 않는 법'에 대한 말씀을 드려볼까 합니다. 

 

 

얼마 전에 슬램덩크가 극장판으로 개봉했었는데요.

90년대 슬램덩크의 추억을 갖고 계신분들은 아마 옛 추억을 떠올리며,

많은 분들이 슬램덩크를 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뜬금없이 슬램덩크를 얘기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네, 저는 슬램덩크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옆에서 떠들어도 큰 흥미가 없습니다. 

 

참 신기하죠. 농구는 엄청 좋아했던 녀석이 슬램덩크를 안봤다는게..

 

물론, 남들이 좋아하니깐 호기심에 아마 책 한두권은 읽어는 봤던 걸로 기억하는데

제가 슬램덩크를 더이상 보지 않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한테는 별로 재미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보지 않았죠. 

 

학생 때 슬램덩크를 모른다고 하면,

친구들 사이에서는 속된 말로 똘아이, 병신 취급을 받기도 했었습니다만,

전 별로 개의치 않았어요.

 

물론 대중이 좋아하는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무조건 좋아해야 하는 당위성을 갖고 있지는 않고,

억지로 좋아해야 할 필요도 없는 것이죠. 

내가 싫으면 남들이 아무리 좋아해도 나에겐 싫은 것 입니다.

 

지금이야 누가 뭐를 좋아하던

내 분야가 아니면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상이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무엇인가 인기가 있다면

너도나도 쫓아하려했던 시기였어요. 

 

제한된 매체의 종류와 정해진 틀 속에서

기호의 선택권이 별로 없던 시절이니 어느 정도 이해는 됩니다.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대중의 생각과 흐름에 동조하지 않으면

마치 낙오자나 이단아, 부적응자 취급을 받기 십상입니다.

 

저는 어린 나이에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남들의 시선 때문에 굳이 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만화책을 즐겨하지 않았고, 오락실을 거의 가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혼자있을 때는 라디오 조립, 비행기 만들기를 하거나,

생각에 꼬리를 물어가는 상상놀이를 하거나 글쓰기를 즐겨했습니다.

친구들과 놀 때는 동네 골목이나 운동장에서 놀면서 떠들고 얘기하는게 더 즐거웠고요.

 

아주 어릴 때는 이것저것 다 해보게 되잖아요. 

근데 이상하게 제가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이상 그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들더라고요.

심지어 관계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싫은 걸 억지로 하면서 살지 않았습니다.

 

나한테 맞지 않는 옷을 입을 때 불편함이 지속되는 것처럼

좋아하지 않는 것을 따라하는 순간부터 스트레스도 지속된다는 것을

다행히도 어린 나이에 알았던 것 같아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다보니,

당연히 주변의 시선과 생각에 대한 눈치는 챙겼습니다만

나의 기호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스타크래프트'가 열풍이었습니다. 

이쯤되면 예상이 되시죠?

네, 저는 스타도 할 줄 모릅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친구들이 '당구'를 엄청 치더라고요. 

네, 저는 당구도 칠 줄 모릅니다. 

 

여기까지 제 얘기 들으시면,

'그럼 넌 할 줄아는게 뭐냐'고 물어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남들이 스타하고 당구칠 때 전 가만히 먼 산만 바라보고 살았을까요?

그 시간에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갈고 닦는 시간을 보냈어요. 

사람들은 본인이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반대로, 본인이 하는 것을 남이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마치 잘못된 선택이나 삶을 산다고 착각하며 비아냥 거릴 수도 있어요. 

 

이것이 바로 '대중이 갖는 배타적 프레임' 이라는 것 입니다.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내가 하는 것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고, 

내가 그것에 지금 동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 그것을 하지 않고 있을 때. 

참여자가 아닌 사람은 마이너한 영역의 낙오자로 분류하고 맙니다. 

 

그런데, 모두가 다 똑같은 걸 해야할 이유도 좋아할 필요도 없습니다. 

물론, 인간의 군중심리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합니다.

특히나, 한국인의 군중심리는 대단하죠.

변질된 유교문화, 갑작스런 경제성장 그리고,

높은 인구 밀집도 속의 제한된 인간관계 속 경쟁심이

주요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어릴 때 부터 집단주의나 관계주의가

삶을 살아가는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자연스럽게 세뇌당하며 살아온 것 같아요.

 

당연히 이런 관념들이 우리 생활 패턴이나 기호의 선택에도
깊숙히 베어 우리의 판단과 결정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자, 여러분!

지금까지 여러분의 과거를 돌이켜 보세요. 

진짜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을 얼마나 찾아보려고 노력해보셨나요?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살지 않았나요?

물론, 그것이 실제로 재미있었으니깐 좋아했을 수 있지만.

진짜 내가 좋아하는 걸 찾는 과정에서 선택된 것인지..

아니면, 내 주변 관계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좋아하게 된 것인지..

생각해보면 구분은 쉽습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마셔야 할 것은

대중의 선택은 틀리고, 내가 선택한 마이너한 선택이

무조건 옳거나 좋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의 핵심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하거나 결정할 때 주변 사람들에게 휩쓸리지 않고,

오롯이 나의 주체적인 선택을 할 수 있기 위한 방법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진정으로 어떤 것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끊임없이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사실 매우 지루하고 번거롭고 귀찮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깐,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에서 어떤걸 좋아하면

나도 좋아하는 것 일 수 있겠다는 맹목적인 생각으로

검증 절차없이 자신의 몸속에 녹여 버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대중이 좋아한다는 것에 대한 비판의식도 한 번 가져보시건 어떨까요?

누구나 좋아할 만하게 만들고 세팅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는 알고 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실제로 좋아서 좋은 것도 있겠지만, 말 그대로 대중이 좋아하니 대중적인 것입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면, 독특함이나 호불호가 존재하는 가치들은 제거해야 합니다.

그렇게 계속 대중의 욕구를 위해 어떤 가치를 정제시키다 보면

결국 개성은 사라지고 말초신경이 쉽게 자극되거나 아주 무난한 속성들만 남게 되죠. 

사실 이렇게 정제된 것들은 날 것으로 대중한테 어필하기 힘듭니다. 

마치 우리가 설탕의 달콤함을 원하지만 설탕 자체를 사서 숟갈로 퍼먹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정제된 가치들은 멋지게 변장되거나 세련된 마케팅을 통해 우리의 선택을 유혹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주변에 재화나 가치들이 고유의 특색 없이 대중의 기호를 맞추는 것들로

내 기호를 채우게 되면 무슨일이 일어날까요?

나 스스로도 특색이 없는 사람이 되고,

남들과 비슷한 그러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최고이고,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면에서 그 누구의 선택도 존중받아야 마땅하고,

대중이 선택한 삶을 내가 그대로 산다고 해도 절대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선택의 문제일 뿐,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니까요.

 

다만, 세상이 한쪽으로 쏠려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윈의 진화론이나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면

우세종이나 다수의 선택은 참이라는 가치로 쉽게 귀결되므로

우리의 삶의 선택도 대중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수가 제시하고 따르는 기호를 선택하는 것이

참이라는 착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휩쓸려서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려는 시도도 안하고, 

그래서,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게 무엇인지도 모르다가

그렇게 남들과 똑같이 살고 싶으십니까?

그것이 편하고 좋다면 그렇게 살아도 좋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여러분 자신에 대한 생각 한 번 해보세요. 

진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고민해보세요. 

남이 좋아하는 것은 남이 좋아하는 것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그런 과정이 어쩔 때는 바보 같고, 미련하고, 돈과 시간의 낭비가 있을 수도 있어요. 

근데 이런 시간이 계속되다 보면

진짜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럼,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휩쓸리지 않는

여러분의 인생을 누리실 수 있게 될 겁니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했던 'eudaimonia' 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단순한 번역으로는 '행복'이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flourishing life' 로 정의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즉, '피어나는 삶' 입니다.

꽃봉우리 속에 어떤 꽃이 있는지는 피어나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씩 꽃봉우리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 꽃봉우리 속에 숨겨진 우리의 잠재력과 본능, 재능이 생각보다 너무 많음에도

꽃봉우리 채로 그대로 있다가 피어나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한 것 같아요. 

 

늦지않았습니다.

여러분을 발견하고 찾아보세요. 

소중한 시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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